레시피가 참 다양해졌다. 다양하다고 말할만큼 정말 다양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조금씩 발전을 하고, 신선한 도전을 하면서 저녁 텐트에서 요리를 하는 순간이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첨가할건 보통 그 날을 마무리하며 맥주를 사러 들어가는 슈퍼마켓에 무엇을 파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장을 보는 시간이야 말로 정말 행복한 시간이다. 한 번씩 악천후로 인해서 근심이 가득할 때도 있긴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거고.
주로 토마토, 파프리카, 치즈, 소시지, 미트볼 정도를 가지고 다양하게 만들어 먹었으며 한 번씩 가스를 추가로 구매하면 고기 사서 익혀먹었고 한인마트 같은 곳에서 라면을 사면 라면을 끓여 먹었다. 후식으로 먹을 과일이나 빵, 요플레, 우유 같은 것도 꾸준하게 사서 먹었다. 벌레 이야기를 하다가 이렇게 음식이야기로 바로 넘어와도 아무렇지도 않은 이유는 뭐 먹는 사진 치고는 정말 못찍었기 때문인거 같다. 주로 밤에 인적이 드문 어둑한 곳에 텐트를 치고 음식을 해먹었기 때문에 빛이라고는 고작 헤드랜턴의 작은 광원에서 나오는 빛이 전부라 카메라 플레시를 터뜨려야 하는데... 카메라 플레시를 터뜨리는 순간 음식 사진이 아니라 '사건 현장' 사진이 되어버린다. 어떻게 보면 요리를 하는 사건 현장이란 말이 틀린말은 아니다. 사진 결과물들과는 다르게 그 시간이 얼마나 아늑하고 행복하며 럭셔리한 시간인지 모른다.
양은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많이 한다. 남으면 버리더라도 아쉬울건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는데 한 번도 남긴적이 없다. 후식을 먹고 맥주도 마시면서 영화 한프로 딱 땡기고 자면 그야말로 신선 놀음이 따로 없다. 하고다니는 꼬라지는 거지라도 언제나 마지막 한 발이 준비되어 있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푸짐하게 한끼를 먹고 나면 하루 스트레스도 싹 풀리고 잠도 잘 오고, 하루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랑 상관없이 다시 페달을 밟을 힘이 생겨난다.
0818
아주 천천히 폴란드를 끝내가고 있다. 정말 길 것만 같았던 그린벨로 자전거길도 이제 끝이 보인다. 정말 그린벨로 끝까지 갈건 아니고 중간에 기회를 잘 봐서 리투아니아로 넘어갈 것이다. 라트비아까진 유럽연합으로 묶여 있어서 국경을 통과하는데 큰 문제는 없을 것 같고 길만 잘 선택해서 무탈하게 갈 수 있게 된다면 정말 좋겠다. 그린벨로는 그린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숲 속으로 우리를 억지로 밀어 넣고 있다. 숲이 정말 멋지긴 하지만 길이 좋지 못하면 사실 숲을 감상할 여유가 안 생긴다. 특별히 숲을 감상하고자 이 길을 택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나간다면 멋진 숲을 감상하며 가고 싶은데 마음이 그렇지 못하다. 어쨌든 지금은 Bialystok에 도착했고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국경까진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다. 익지 않은 바나나가 이렇게 텁텁하고 딱딱한지 처음 알았다. 앞으로 초록색 바나나는 조금 주의해야겠다.
2017.8.19
등에다. 숲 속에서 무는 벌레는 모기랑 등에밖에 없는 것 같다. 거미는 많이 있고 물 수도 있겠지만 한 번도 물린 적은 없고... 모든 등에가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유독 아프다. 모기한테 물리는 그 순간의 고통은 감지를 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는데 등에한테 물리면 바로 알 수 있다. 정말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그런 고통이 바로 느껴져서 바로 손이 간다. 그래서 등에는 오랫동안 피를 빨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쳐낼 수 있는 손이 없어서 따가운 상태로 가만히 있어야 하는게 아니면 주로 바로 쳐내야 할 만큼 고통스럽다. 그리고 증상은 모기와 비슷한데 종종 엄청 크게 부풀어 오르는 것 같다. 간지러움도 더 심하고 오래간다. 최대한 긁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그것도 역시나 쉽지가 않다. 그리고 앉자마자 주저 없이 바로 주둥이로 살을 찌른다. 그래서 뭔가 다리나 팔에 혹은 등에 앉았다는 느낌이 들면 바로바로 쳐내야 한다. 겁이 없는지 인간이란 존재를 모르는 건지 정말 미친듯이 달려든다. 빠르기도 빠르다. 그래도 텐트 안으로 들어온 적은 없다. 그래서 그런지 더 가렵고 아프고 무섭게 생기긴 했어도 모기가 더 밉다.
0820
날이 갈수록 요리는 다양해지고 걸리는 시간은 줄어들고 맛은 좋아진다. 언제부터 어떤 요리를 했었는지 정확히 생각이 나지는 않는다. 아마 토마토소스를 곁들인 파스타가 제일 첫 번째로 한 요리였던 것 같은데... 라면을 요리로 보기는 조금 애매하고 매쉬드 포테이토도 해 먹었던 것 같고. 요즘엔 소금과 파프리카, 후추, 바질 가루를 적절히 섞어서 만든 특제 양념 소스를 즐겨 사용하고 있다. 처음에 만든 이후로 정말 잘 쓰고 있는 것 같은데... 이게 꼭 라면스프 같아서 정말 만족스럽다. 바질과 후추의 향이 딱 라면스프의 향과 비슷하다. 어쨌든 벌써 해 먹어본 파스타를 종류별로 나열하면 꽤나 될 것이다. 마늘과 양파를 올리브 오일에 볶고 거기다 뭘 넣어서 파스타 소스를 만드는건 다 똑같으니 크게 다를건 없지만 그래도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서 많이 달라진다. 사실 달라지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먹으니 맛있고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은 없다. 간혹 삼겹살처럼 보이는 고기 800g정도 사서 구워먹기도 하는데 고기를 구우려면 시간이 좀 오래 걸리고 가스 소모량이 많아 자주 먹기엔 조금 무리가 있다. 어쨌든 배가 고파서 그런지 아니면 그냥 밖에서 먹어서 낭만적으로 느껴져서 그런지 단 한 번도 맛이 없었던 적은 없다. 정말 지금까지 만들어 봤던 요리들의 레시피를 체계화시켜서 한국에 돌아가서 장사를 해도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