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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 종주]인천의 아라서해갑문 그리고 서울, 서울, 서울

그토록 먹고 싶었던 국밥도 한 그릇 하고, 호텔에서 뭐 좋다고 하는 술도 한 잔 하고. 인천에서 부산까지 훨훨 날아가면 될 듯 하다.
러시아의 9월은 추웠는데 한국은 아직 가을이 오지 않은 모양이다. 자전거를 다시 조립하고 마지막 연장전을 위해 준비를 마쳤다.
인천의 아라서해갑문으로부터 부산의 을숙도 사대강 자전거 국토종주 길의 기점까지 총 633km이다. 미국으로 따지면 주 하나의 크기도 안되는 짧막한 거리이다.
아주 잘 만들어진 길로 달리기만 하면 될 일이다. 유럽의 유로벨로나 폴란드의 그린벨로가 잘 되어있다지만 우리나라의 사대강 국토종주 자전거길에 비하면 많이 부족한 수준이다. 길을 일부러 잃고 싶어도 잃기가 쉽지 않을 만큼 표지판이나 이정표가 잘 만들어져있고,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차도로 내몰리는 일도 전혀 없다.
공덕역의 을밀대에서 평양냉면과 팔당에서 초계국수를 먹었다. 이렇게 그동안 먹고 싶었던 음식들을 먹으면서 부산까지 천천히 내려갈 생각을 하니 너무나 즐거웠다.
최대한 관광객의 입장으로 서울의 풍경을 카메라로 담아보려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프랑스의 센강, 벨기에의 뫼즈강, 독일의 라인강, 리투아니아의 네리스강, 러시아의 모스크바 강이 우리나라의 한강만 할까 싶지만 서울이란 공간의 익숙함 때문인지 한강은 그렇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 처럼 우리나라에서 자전거를 계속해서 타는 것은 너무나도 쉽고 익숙했지만 글로 적어보려니 느낌이 사뭇 다르다. 자전거를 타고 훑고 지나가면서 서울이란 장소에 대해 특별한 감정이나 느낌을 느끼기엔 너무나 많은 기억들과 추억들이 있는 곳이라 그럴까. 한강 라이딩은 말그대로 그냥 '한강 라이딩'일 뿐이다. 그 어디보다도 잘 되어있는 자전거 길과 '지나갈게요!' 하면서 우르르 지나다니는 라이딩족들, 사람이 너무 많아 이곳 저곳을 두리번 거려야하는 정신없는 그냥 그저 그런 느낌이다. 2014년도 군 입대 전에 마찬가지로 태오와 함께 인천에서 부산까지 자전거길 종주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조금 무모했던 기억이 달콤해서 이렇게 미국과 유럽 그리고 러시아 일부를 관통해서 다시 돌아온 이곳 서울은 조금 아쉽지만 물을 많이 타서 싱거워져버린 생맥주의 느낌이 아닐까 싶다.

인천에서 신촌까지 갔다가 신촌에서 친구들을 만나서 치킨에 맥주 한 잔 하고 그렇게 다음 날 다시 국토종주 자전거 길에 올랐다. 오후 늦게까지 늑장을 제대로 부리고 느긋하게 출발해도 서울을 빠져나가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미 아는 길이기도 하고, 텐트를 비롯한 취사도구들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기도 하고, 유사시 이용을 할 수 있는 편의점이나 숙박시설도 잘 되어있기 때문에 별다른 걱정 없이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둥둥 떠서 가는 느낌으로 라이딩을 했다. 왠지 2014년도에 탔던 자전거보다도 훨씬 가볍게 느껴졌다.

 

0915

연장전이다. 9400km를 탔으니 이제 국토종주 633km만 더 타면 10000km가 된다. 사실 국토종주는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집에 그냥 가고 싶은데 10000km는 달려야 할 것 같고. 이상하다. 날도 덥고... 아라서해갑문에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사람들이 이제 국토종주 마치는 건 줄 알고 박수도 쳐주고 수고했다고 인사도 해줬다. 꼴이 뭔가 끝내는 꼴이긴 했으니. 서해갑문 갔다가 나오는 길에는 어떤 사람이 부산까지 가냐고 물어봐서 그냥 신촌에 친구 만나러 간다고 그랬다. 그런 꼴은 아니지만 설명하기도 귀찮고... 3년 전 국토종주를 했을 때와 크게 다른건 없지만 이제 숙박시설 찾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