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여정이 이렇게 거의 다 마무리가 됐다.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한국의 인천으로 들어오며 이젠 서울에서 울산까지만 무사히 달리면 되겠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이렇게 부산까진 무사히 왔으니 이제 울산까지만 무사히 달리면 된다. 우리가 이렇게 긴 여행을 떠나게 된 것도 어쩌면 2014년도에 생각도 없이 했던 국토종주의 좋은 기억 때문이었는데, 이렇게 미국과 유럽 그리고 러시아 일부를 횡단한 결코 잊지 못할 추억들은 나중에 우리를 어디로 데려다 줄지 참 궁금하다.
참고로 부산을 관통하는 자전거 길은 지금까지 겪었던 수 많은 도시들을 달렸을때와는 차원이 다른 난이도를 보여줬다. 이미 차도가 복잡하고, 운전 스타일이 사납기로 유명한 악명높은 곳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긴장은 하고 있었지만 이정도일줄은 몰랐다. 날도 덥고 바닷바람에 온몸이 끈적끈적하고 수많은 자동차의 경적소리와 인파로 인해서 고생을 꽤나 많이 했다.
0919
이제부터 낙동강을 따라서 내려가면 된다. 태오 자전거의 뒷바퀴 튜브가 수도 없이 터지더니 이젠 구제불능 상태까지 와버린게 아닌가 싶다. 흔하게 사용하는 사이즈도 아니라 왠만한 자전거 가게에서는 사이즈 찾기도 너무 힘들었다. 결국 문경에서 찾긴 했지만 이것 역시 딱 맞는 사이즈는 아니고 임시방편으로 어찌됐든 부산까지만 가면 되는거니 장착을 하고 가기로 했다. 뭐 굴러는 가니까... 300km 정도 남았는데 이 정도는 벼텨주겠지. 미세먼지인지 안개인지 하루 종일 모든 곳이 부옇게 보였다. 그렇게 부연 경치가 나름대로 멋지긴 했지만 내일은 좀 맑았으면 좋겠다. 좋은 곳들을 지나면서도 마음에 여유가 없어 하루 달리는 거리에만 집착하니 조금 안타깝다. 내일도 그렇게 달리겠지만. 밤에 비가 온다고 해서 어디 천막 같은 곳 밑에 텐트를 쳤다. 사람들이 앞에서 돌아다니지만 이곳은 어두우니까 안 보이겠지. 천막 밑에 안전하게 텐트 쳤으니까 오늘 아주 폭우가 쏟아지면 좋겠다.
0920
길바닥에 사마귀 시체가 너무 많다. 메뚜기는 알아서 잘도 피하던데 사마귀는 좀처럼 피할 생각이 없고 다가오는 무언가와 한바탕 하려 하니까 그렇게 된거다. 길 한복판에서 용맹하게 앞길을 막고 있던 녀석을 옆에 풀밭에 던져줬다. 나는 수레를 돌려서 가겠지만 다른 사람은 아닐 수 있으니 성질 좀 죽이고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정작 본인은 뭘 지키고 있는지도 모른 채 하루 종일 바쁘게 어떤 것과 싸워야 한다면 그것도 너무나 피곤한 일 아니겠나. 참 슬픈 일이다.
0921
어찌됐든 거의 다 도착했다. 낙동강 을숙도까지 70km정도 남았고 울산까지도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이제 140km정도만 무사히 잘 달리면 집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날씨도 좋고 하늘도 예쁘고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고 딱 좋은 것 같다. 모기가 조금 설쳐대긴 하지만 이 정도 쯤은 그냥 물려줄 수 있다. 지금은 텐트 안에 누워서 내일 부산에 도착하면 뭘 먹으면 좋을지 고민 중이다. 너무 행복하다! 뭘 먹으면 좋을까...
0922
끝났다. 10000km도 넘었다. 이제 정말 집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마지막 텐트 사이트는 멋진 곳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