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국토 종주]이젠 안녕, Real Home Sweet Home 울산.

을숙도에서부터 부산을 뚫고 광안리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9월 말이니 한여름 해수욕장의 뜨거운 열기는 없지만 그래도 바닷가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훌륭한 바닷가의 경치가 있는 곳에 텐트를 칠수는 없었다.
우리의 정말 그랜드 파이널 라스트 텐트사이트는 그렇게 거창한 장소는 아니고 어느 아파트의 한가운데에 있는 공원에 어렵사리 자리를 마련했다. 최대한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나무 사이로 요리조리 들어와서 텐트를 쳤는데 어차피 하룻밤만 잘 넘기면 되는거니... 왠 고양이 한마리가 어슬렁 거리는데 경비아저씨한테 가서 일러 바치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마지막 부산의 해운대에서 울산까지 달리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패니어 랙과 헬멧을 걸쳐놓으니 꼭 어디 전쟁터에 나가는 전차같은 느낌이 난다. 정말 마지막이다 힘내서 달려보자.
오션 뷰가 기가막히는 부산과 울산 사이의 어떤 지점에서 태오의 바퀴가 마지막 울부짖음을 토해낸다. 제대로 맞지도 않는 튜브를 끼워놓고 300km가 넘는 거리를 달려왔으니 그 마음은 조금 이해가 된다지만. 이젠 타이어 펑크 패치도 본드도 뭐도 제대로 남아있는게 없다. 어떻게든 매꾸고 달려야 한다. 만약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면 끌고라도 가야 한다.
반가운 한국 모기. 얼쩡거리길래 한 번 잡아봤다. 러시아의 모기 대군을 뚫고 여기까지 왔는데 한 두마리 모기는 아무렇지도 않다. 얼마 남지 않았으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풀어줬다. 
드디어 도착했다. 울산의 태화강이다. 집을 나서서 지구를 한 바퀴 돌아 거꾸로 돌아온 태화강의 모습은 여느때와 같이 평화롭고 아늑했다. 오랜 여정은 이제 정말 끝이 났다. 이젠 안녕~

0922

집에 도착하기 전 마지막 텐트를 쳤다. 어디 아파트단지 가운데 있는 공원인데 최대한 보이지 않게 쳤는데 어떨지 모르겠다. 주변에 사람도 많고 차도 많지만 바로 앞에 앞발을 감추고 앉아있는 고양이만 우리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 같다. 서울을 떠나면서부터 머리도 못 감고 샤워도 못했으니 벌써 일주일째다.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은 이 찝찝함은 내일부터 아무런 걱정거리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내가 그리워해야 하는 것은 다른게 아니고 이 찝찝함 일수도 있겠다.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면 결국 남는 것은 땀에 절은 찝찝함 뿐이니... 하루 달리는 거리나 어디를 달렸고 무엇을 봤고 하는 것들은 다 부수적인 것이다. 물티슈나 젖은 수건으로 아무리 열심히 닦아도 어쩔 수 없는 이 찝찝함은 집에 도착해서 샤워를 하는 순간 사라질 것이다. 육 개월 간 밤잠을 설쳐가며 느껴왔던 이 찝찝함이 단 한 번의 샤워로 지워진다는 것은 다행이기도 슬픈 일이기도 하다. 오늘은 마지막 밤이니 이 찝찝함을 힘껏 끌어안으며 잠에 들어야겠다. 그렇잖아도 오늘 바닷바람을 많이 맞아서 찝찝함이 단연 으뜸이다!

 

0923

울산에 도착했다. 태화강을 건너면서 사진을 찍었다. 울산에서 사진을 찍으려니 기분이 이상했다. 평소에 특별히 관심도 없던 태화강이 어찌나 그렇게도 반갑던지... 아주 철저히 여행자의 마음가짐으로 울산 시민에게 사진 좀 찍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사진을 찍고 나는 우리 집으로 태오는 태오 집으로 갔다. 집으로 가는 길에 옆에서 자전거 타던 어떤 사람이 오랜 기간 동안 여행하고 있는 거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이제 다 끝내고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이야기 해줬다. 바로 저기 앞이 우리 집이라고... At last.. I'm my home!

 

EPILOGUE

 

삶과 여행 여행을 통해서 배우는 것

 

우리는 여행을 통해서 뭔가 배우게 된다. 특별한 목적이 없는 여행도 있겠지만 가벼운 여행이더라도 떠나기 전에 준비를 하고 기대를 하고 여행을 하는 동안 즐거움을 느끼고 혹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여행을 마치고 이전의 여행을 추억하며 앞으로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한 여행들이 모여 우리의 삶을 이룬다고 생각하면 우리가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는 이 삶 자체가 하나의 여행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친구를 만나고 학교를 다니고 연인과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는 이 모든 과정은 어쩌면 우리의 삶을 이루고 있는 크고 작은 여행들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여행들이 하나 둘 모여서 삶의 밑거름이 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데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설령 큰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먼 훗날 한 번씩 꺼내볼 수 있는 재미있는 추억거리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여행이 삶에 의미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여행이 의미로 탈바꿈하기 위해서 여행자가 반드시 해야 하는 노력이 있는데, 그것은 오랜 기간 시간을 두고 여행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여행이 가지고 있는 일련의 과정이 끝나고 나면 마냥 아쉽고 섭섭하고 다시 한 번 더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여행 중에 행복했던 것을 한 번 더 경험하고 싶고 하지 못했던 것에 아쉬움이 남고 이렇게 했었으면 어땠을까 후회가 남는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격해진 감정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여행을 객관적이기 보다 감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만약 같은 여행을 한 번 더 간다면 과연 이전보다 더 만족스러운 여행이 될 수 있을까?

 

여행을 가기전의 와 여행을 다녀온 후의 는 엄연히 다르다. 스스로 느낄 수는 없더라도 우리는 여행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통해서 달라진다. 지금껏 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을 했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여행을 다녀온 후의 새롭게 달라진 관점으로 보는 세상은 분명히 이 전에 느꼈던 세상과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여행을 마친 직후에는 느끼기 힘들다. 많은 시간을 내 특별한 경험들로 달라진 관점과 함께 보내다보면 분명히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여행자는 반드시 이렇게 달라진 관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여행이 가져다주는 새로운 깨달음이자 여행을 우리의 삶 속에서 특별한 의미로 탈바꿈시키는 과정인 것이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의 삶이 크고 작은 수많은 여행들로 이루어져 있다. 좋든 싫든 한 번 떠난 여행은 언젠가 반드시 끝이 나게 되어있고, 여행을 마치고 우리가 그 여행의 소중한 의미를 찾기 위해 꾸준히 노력을 한다면 보다 더 특별하고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앞으로 더 멋진 여행을 할 수 있는 연습과 준비를 하는 것이다. 진정한 여행의 고수는 일상적인 삶 마저도 여행처럼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한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아주 사사로운 일상들이라도 그 곳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아내고 내 삶에 녹여낼 수 있다면 또 그것만큼 즐거운 여행이 어디 있을까.